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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쓴 시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2004년)

by 한빛 (hanbit3) 201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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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저널 신인문학상 등단작품(2004년)


(제14회 신인문학상)


1. 호박


뒷뜰 작은 텃밭에

몇 삽 안 되는 구덩이 파고

통통하게 살찐 놈만 골라서

호박씨 여나므 개 꼭꼭 눌러 꽂았다.


아침마다 밤새 모은 요강단지 들고 가

애탄 기다림 오줌을 부었다.


새파란 떡잎이 쏘옥쏙 올라올 때마다

신기한 환호성 지르고

넝쿨이 뻗을 때 여린 순과 잎을 따

된장 국물 옷 입혀 밥 한 술에 걸쳤다.


토실해진 새파란 놈은 저녁 밥상에 오르고

몇 놈은 남겨두어 달콤한 호박죽을 기약했다.


오줌 붓던 할머니 얼굴엔 

결실의 웃음 가득

뒤따르며 넝쿨목걸이 만들던 어린 나는

벌써부터 호박죽 향기 침이 가득 고였다. 





2. 여 정


작은 씨앗으로 잉태되었다.

두려운 떨림으로 사람들이 어우러진

세상의 향기 조금씩 맡으며

한 걸음씩 조심스레

걸음마를 배웠다.


늘 바른 양심의 질책으로

위선을 알기 이전에 

도덕의 틀을 소중한 규칙으로

절대 변할 리 없는

순응을 배웠다.


베일 싸인

가식假飾들이 난무할 때

나는 닮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 더해 갈수록

진실의 모순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경멸의 그들과

닮아가고 있는 나를 느낄 때

잃어버린 순수가 그리워져

탄식의 신음이 배어나고

그래도 아직은 살아볼만한 곳이라고

애써 자위하며

나 속의 또 다른 나를

한 겹씩 벗고 있었다.

아! 여정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3. 파지破紙 할머니


사무실 앞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다녀가는 

손님이 있다.


세월의 온갖 풍상

한여름을 그리도 까맣게 태우더니,

등 굽은 작은 육신

바짝 마른 갈퀴로

유일한 생계수단을 긁는다.


집 나간 며느리.

서울로 간 아들의 애물단지

홀로 가꾸며

행여 학교에서 칭찬이라도 받으면

손녀딸 자랑이 하염없다.


“요새는 이 짓도 못해먹을 노릇이라우,

나 같은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한숨 섞인 푸념이 석양과 함께 기울 때

문 밖에 서서 서너 장 파지破紙 라도

먼저 얻을 양 보초를 선다.


지난겨울

얼어터진 보일러 고치지도 못하고

여린 손녀딸 끌어안고

독한 추위 서럽게 이겨냈다는데

그놈의 보일러는 고치기는 했는지


“나 같은 사람은 혜택도 못 받는다우,

등본에 아들 있다고 안 된다고 하더이다.”


커피 한 잔 받아 쥔 넘치는 감사 인사가

왜 그리도 날 서글프게 하는지…


[심사평] 


 손현희의 [호박] [여정] [파지破紙 할머니]는 소박하고 편안하게 스며드는 시이다. 뒤틀고 과장되게 엮은 시가 아니라, 평이한 일상사를 대상으로 한 정직한 심안心眼으로 삶을 제시하는 시적 발성이 소탈하고 견고하다.


심사위원 : 윤강로, 박경석


[수상소감]


먼저, 나의 시에 대한 끝없는 동경의 발단이자 소재가 되어주고, 내 삶을 지탱해 준 오랜 그리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시를 쓸 때면 언제나 떠오르던 한없이 자상하고 넓은 하늘과도 같았던 아버지의 안쓰러운 ‘딸 사랑’이 목이 멥니다. 언제나 큰 거울이 되어 주시며 평생을 시처럼 사셨던 그 분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당선 통보를 접하고, 지난 며칠 동안 기쁜 마음보다 무거움이 얼마나 많이 나를 눌렀는지 모른다. 처음 [문학저널 신인문학상]에 응모 할 때, 많은 망설임과 함께 홀로 나 자신과 싸우며 수없이 많은 질문과 대답을 계속 해야만 했었다. 과연 내가 가려고 하는 이 길이 내가 그토록 동경하고 원했던 올바르고 순수한 길인가?


오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시인’ 


나는 지금껏 나름대로 진실된 삶을 ‘시’라는 장르를 통하여 담아내며 살아왔다. 때때로 그 이름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감에 빠져 분노할 때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갈증을 느끼던 이름이기도 하다. 무거웠던 마음을 추스른 뒤, 나는 가장 먼저 나 자신과의 약속을 다시 한번 다짐해야 했었다. 나에게 있어서 ‘시’가 내 삶의 가장 큰 근원이 되고 가장 올바른 지표가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순수하고 겸손할 것을 다짐했다. 시를 씀으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이고, 시를 사랑함으로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 그 옛날 내 아버지의 모습처럼…….


이제 나는 나에게 약속한다. 언제나 변치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 고된 여정을 걸어가고자 한다. 내가 꿈꾸는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지인들 중에 시인이 되고 난 후, 습작기 때보다 글쓰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여러 번 있다. 아마 그것은 더욱 고뇌하고 더욱 깊이 사유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 발표되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부지런히 쓸 것이다. 아직은 미숙하고 어리지만 늘 겸손하게 배우는 마음을 놓지 않을 것이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분이 참 많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부끄러운 이름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한결같은 사랑으로 뒷바라지 해주며 시 속에 묻혀 살 수 있도록 시의 터전을 마련해 준 사랑하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또 오랜 시간을 날마다 시 속의 삶을 읽고 배울 수 있게 해준 우리 [시사랑 마을] 식구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내 삶 속의 시’를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었던 ‘글 친구’ 선미숙 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숙한 시를 읽어 주시고 채택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두 분과 문학저널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순수한 이름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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