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색에 맞는 이름 붙여야...우리말 '거님길'은 어떤가
▲ 올레길? 얼마 앞서 새롭게 단장하고 금오산 저수지 둘레로 길을 냈어요. 그리고 '금오산 올레길'이라고 팻말까지 붙였지요. 새롭게 달라진 금오산을 소개하면서 '올레길'이라고 기사로 내보냈다가 한 통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 길을 '올레길'이라고 하는 건 잘못된 말이라고요.
"올레길은 제주도에만 있는 겁니다. 제주지형의 특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을 여행코스로 만든 게 올레길입니다. 그로 인해 둘레길, 옛길 등이 생긴 건데, 무작정 여행코스의 길을 기자는 그냥 올레길로 칭하는군요. 그리고 금오산의 지형상 올레길이라고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다른 말로 정정해야 합니다. 전 제주도 출신도 아니며 아무 관련도 없습니다만, 요새 기자들 가끔씩 올레길이라고 기사 쓰더군요. 막상 가보면 올레길의 구조와는 전혀 맞지가 않는 데도 말이죠. 여행코스의 길이 모두 올레길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 말' 살려서 쓰자고 했던 내가...
며칠 앞서 구미시 금오산이 새롭게 단장하고 바뀌었다는 기사를 올렸지요. (금오산이 달라졌어요, 올레길 가보셨수?) 그 기사가 나가고 난 뒤에 기분 좋게도 한 포털사이트의 메인까지 오르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사실 저도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아는 분이 축하한다며 문자를 보내줘서 알았지요. 그러나 기쁨도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문자에 뒤이어 인터넷 편지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그건 바로 제 기사를 보고 보낸 거였지요. 금오산에 새로 생긴 길이 '올레길'이 아니라는 얘기였어요. 게다가 그 표현을 바로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답니다.
그 편지를 읽고 '어이쿠,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이걸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기사를 통해 '금오산 올레길'보다는 야은 길재 선생의 얼이 오롯이 담겨 있는 금오산을 소개하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쓴 기사 끄트머리에 요즘 새롭게 달라진 '금오산 올레길'을 소개하는 글도 넣었던 거지요.
그런데 아마도 편집부에서는 새롭게 단장된 금오산을 더 나타내려 했나 봅니다. 그래서 기사 제목도 '금오산이 달라졌어요, 올레길 가보셨수?' 하고 고쳐서 뽑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기사가 나가고 난 뒤에 위와 같은 편지를 받은 거랍니다.
내 기사를 꼼꼼히 읽고 잘못된 걸 바로잡아 달라는 그분이 무척 고맙기도 하고 또 부끄럽기도 했답니다. 지금까지 기사를 쓰면서 되도록이면 '우리 말'로 쓰려고 애썼고, 좀 더 쉽게, 좀 더 바르게 살려서 쓴다고 애써왔는데, 이번 기사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게 몹시 후회스러웠습니다.
곧바로 답장을 보내서 잘못 쓴 걸 이야기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부탁했지요. 그분은 고맙게도 다시 답장을 해주었고, 내 블로그까지 와서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고 하네요.
'올레길'은 제주도 특성에 맞는 길 이름일 뿐
내가 기사로 썼듯이, 금오산에 새로 난 길을 갔을 때 현장에는 '금오산 올레길'이란 팻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걸 봤을 때, 나 또한 '아니, 아무 곳이나 다 올레길이래?'라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놓고 기사 쓸 때는 아무렇지 않게 '올레길'이라고 소개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앞서 받은 편지글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여행코스로 만든 길이 모두 올레길이 아닌데도 덮어놓고 그렇게 쓰는 건 틀림없이 문제가 있네요.
▲ 다음 기사 댓글 갈무리 기사가 <다음> 문화생활 첫화면에 올랐어요. 댓글도 많이 달렸는데, 올레길은 잘못 된 말이라고 지적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잘못 된 건 바로 잡아야겠지요.
사전에서도 '올레길'을 찾아보니, <위키백과>에 이렇게 나와 있네요.
"올레(ᄋᆞᆯ레)는 제주도 주거 형태의 특징적인 구조로 볼 수 있으며,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제주의 거친 바람으로부터 가옥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 주변으로 돌담을 쌓았다. 하지만 돌담의 입구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를 못하기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좁은 골목을 만들었다. 제주에 많은 현무암을 쌓아 만들었다."
그야말로 흔히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길을 '올레길'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겠지요?
요즘 관광 목적으로 만든 길에 이름을 붙일 때, 실제로 '올레길'이라 쓰는 걸 많이 봐왔습니다. 또 다른 말도 있는데, '둘레길'이란 이름도 있어요. 이 낱말은 참 괜찮다 싶었어요. '지리산 둘레길'처럼 지리산 둘레를 빙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길을 표현한 것인데,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북 의성 경덕왕릉에서 만난 '거님길'...반갑네!
어제 자전거를 타고 경북 의성에 다녀왔습니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경덕왕릉을 둘러보고 왔답니다. 이곳은 지난 2007년 여름에 다녀와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도 소개한 곳인데, 그 때만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지요. 그때 기사가 오름에까지 오르고 반응도 꽤 좋았답니다. 그 뒤로 벌써 3년 남짓 흘렀으니 이곳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몹시 궁금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의성군에서 '조문국 박물관'을 세울 계획이 있나 봅니다. 길 가에,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조문국 유물이 있다면 제보를 해달라는 현수막 알림글이 있더군요.
지역의 훌륭한 역사이고 박물관을 세워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니 뒤늦은 감은 있지만 참 반가웠답니다. 그런데 참말로 반가운 걸 또 봅니다. 지난날엔 경덕왕릉 둘레를 소나무로 빙 둘러싸고 있어 자칫 왕릉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을 하고 커다란 옛무덤들마다 이름을 매겨놓았어요. 그 가운데에 알림판을 새로 세웠는데 그 글귀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답니다.
▲ 고분 거님길 참으로 반갑더군요. 그동안 '산책로'라고 쓴 글은 봤어도 어디에서도 '거님길'이라 쓴 건 본 적이 없었어요.
"어, 자기야 저거 봐! 저기 팻말에 쓴 글자 좀 봐!"
"하하하 '거님길'이라고 써놨네."
"이야, 참말로 반갑다. 아니 저걸 '거님길'로 쓸 생각을 어떻게 했지?"
"거님길이란 말, 최선생('우리 말'을 올곧게 살려 쓰는 최종규 선생)이나 나밖에(?) 안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쓰는 걸 본 적이 없거든."
'거님길'이란 말 들어봤나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우뚝 솟아있는 무덤 사이로 예쁜 길을 내놨는데, 바로 그 길을 '고분 거님길'이라고 팻말에 쓴 거였어요. 사실 저도 걷는 길, 흔히 '인도'라고 표현하는 그 길을 나타낼 때는 언제나 '거님길'이라고 쓴답니다.
지난날 최종규 선생이 쓴 걸 보고 그 낱말이 무척 아름답고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을 잘 나타낸 말이라 여겨 늘 그렇게 써왔거든요. 그런데 새롭게 바뀐 '조문국' 고분 둘레에 난 길을 그렇게 써놓은 걸 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답니다.
'올레길' 아무 곳에나 붙이지 맙시다
'거님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책로의 '북한말'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아마도 그렇게 쓰나 봅니다. 이참에 한 가지 제안을 해봅니다. 덮어놓고 '올레길'이라 쓰지 말고 가장 알맞은 낱말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어요. 바닷바람을 막으려고 만든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골목 들머리부터 세운 그런 길이 아니라면, '거님길'로 바꿔 쓰면 어떨까요? 그런 뜻에서 봤을 때, 제가 소개했던 금오산 길도 '금오산 거님길' 이렇게 바꾼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조문국 경덕왕릉 지난 2007년 6월에 갔을땐, 왕릉이 소나무에 빙 둘러싸여 있어 쉽게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 가니 둘레를 새로 고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 팻말도 따로 세웠더군요. 지금 의성군에서는 '조문국 박물관'도 세울 계획이 있나 봅니다. 훌륭한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 일은 매우 값진 일이지요.
▲ 경덕왕릉 (1호고분) 새롭게 단장한 경덕왕릉입니다. 세 해 앞서 이곳을 소개한 뒤로 널리 알려지고 또 이렇듯 새롭게 바뀐 모습을 보니 매우 남다른 마음이 들었답니다. 뿌듯하기도 했고요. 지금도 왕릉 둘레에 있는 큰 무덤에는 발굴조사를 하고 있더군요.
▲ 이것이 바로 '거님길' 3년 만에 다시 찾아간 '조문국 경덕왕릉'에서 매우 반가운 글귀를 봤어요. 커다란 옛 무덤 둘레에 걷기 좋은 길을 예쁘게 만들고 그 길을 '고분 거님길'이라 이름 붙였네요.
제주 올레길이 널리 알려져서 이름났다고 하여 지역마다 앞 다투어 엇비슷한 길을 만들어놓고 너도나도 마치 유행을 좇듯이 덮어놓고 '올레길'이라고 이름 붙이는 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듯합니다. 틀림없이 바른 말이 아니니까요. 또 어쩌면 언론에서도 너무나 쉽게 '올레길'이란 낱말을 함부로 썼는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 어떤가요? '거님길'이란 낱말, 가장 알맞은 말이 아닐까요? 누가 들어도 쉽게 '걷는 길'이라는 걸 알 수 있고, '우리 말'이면서도 '바른 말'이라 여겨지지 않나요?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기사보기 ☞ :'올레길' 아무 곳에나 막 붙이지 맙시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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