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할 줄 알고 듣기는 싫다?
글- 한빛/손현희
'귀' 는 있으나 귀로 듣지 않는 사람들.
'눈' 으로 읽으나 '마음' 에 새기지 않는 사람들.
'귀' 로 듣고 '눈' 으로 읽으며 '입' 으로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귀로 듣고 눈으로 읽어 마음에 새기고, 그 새긴 뜻을 입으로 말하는 사람!'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사는 모습이 다르듯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 다를 것이다. 우리는 책이나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아무리 좋은 말과 글이라 해도 그저 겉핥기만 하고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 새기기는커녕 아예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그런 사람을 볼 수 있다. 무엇 때문일까? 누구나 살면서 나름대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들 삶의 철학(?)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아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거나 더 나아가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까지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문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하물며 대통령이라고 해도 백성들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힘없고 낮은 곳에서 말하는 작은 소리라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쓴소리' 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이다. 대통령 뿐 아니라, 나랏일을 하는 국회의원, 지역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 또 아파트 부녀회를 이끌어가는 부녀회장, 하다못해 한 집을 꾸려가는 아버지도 식구들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우리 글 쓰는 사람들에게도 맞추어 보자. 먼저 책은 왜 펴내는가? 라고 하는 물음을 던져 본다.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면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만일 이런 마음으로 책을 쓴다고 하면 그 마음부터 잘못된 것일 게다. 적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답고 참된 삶을 글로 써야하고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글과 삶이 하나 된 지은이 모습에서 함께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면 그 책은 참 좋은 책이고 또 쓴 사람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많은 문학인들은 자기가 쓴 글이나 책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 보는 일기를 쓰는 것이 나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 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가 ‘쓴소리’ 라고 해도 허투루 들어서야 되겠는가? 좀 더 귀담아 듣고 자기의 생각과 행동(자기가 쓴 글)을 되돌아 볼 줄 안다면 자기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돈만 있으면 자기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삶이 배어있지 않는 '상상력' 이나 문학 이론만으로 묶여 있는 책이 큰물을 이루었다고 해도 잘못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또 쉽게 자기 글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에 시를 쓰거나 책을 펴내는 사람들이 손수 겪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컴퓨터 자판 앞에서 쉽게 글이 나온다. 몇 번이고 생각하고 고치는 일도 하지 않은 채, 게시판에 바로 보여 준다. 또 마땅히 살펴봐야 할 맞춤법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글을 올린다. 더구나 그 글이 인쇄되어 책으로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발로 뛰며 온몸으로 겪은 일을 쓰지 않고 책상 앞에서 쉽게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내세우고 싶어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난 어떤 책을 읽고 내 생각과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태껏 '시' 라고 쓴 것을 다시 읽으면서 낯이 뜨거울 만큼 부끄러웠다. 그 뒤로 글을 되돌아보며 하나 씩 고치기도 했고, 또 그 모양을 그대로 올려두어 거울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느 때이든지, 내가 먼저 온몸으로 겪은 참되고 삶이 담겨있는 시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귀' 는 남의 말을 들으라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 '쓴소리' 이거나 어쩌다가 잘못된 말이라 해도 새겨들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눈' 은 읽고 보라고 있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자기에게 좋은 것만 가려서 볼 수는 없다. 때로는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할 때가 있다.
'입' 은 먹고 말하라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 좋은 사람에게도 주고 싶어 한다. 또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마땅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때론 내 입에 맞지 않는 것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즐겁게 먹는다면 몸에도 좋을 것이다. 만일 그래도 그 것이 먹기 싫다면 먹지 않으면 된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바른 길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말해주는 것이 좋은 일 아니겠는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아 바른 길을 일러주는데, 자기의 믿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 길에서 한 발짝도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참으로 딱하다. 남의 귀를 열려면, 내 귀부터 열려 있어야 한다. 내 귀는 꾹 닫아놓고 자기 목소리만 들려준다면 언젠가 듣는 귀도 저절로 닫히게 된다. 귀가 닫힌 뒤에는 마음마저 닫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소리를 들어 줄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
이 말은 말할 것도 없이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2005년 7월 19일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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