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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의 기사와 사는 이야기/한빛이 사는 이야기

[스크랩] - 이별의 노래 - 박목월

by 한빛 (hanbit) 2018.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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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의 노래 -





                                              

                                         

                         


                                                        


며칠전 木月을 좋아하는 한 여류시인을 만났다.목월은 가고 없어도 그에 대한 愛情이 깊었다. 고향이 건천이라 하여 함께 그의 生家를 찾아갔다.구름한점 없는 가을 하늘이 높고 파랬다.햇살도 따가왔다.

나이들어 가을이 오면 더욱더 구슬피 들리는 목월의 대표적인 시 "이별의 노래"가 잉태된 배경에는 부인 유익순의 희생적인 사랑이 있었다.

詩人이란 정신적이고 사상적인 세계관이 純白해야 세상을 울리는 명시가 태어나는 가 보다.목월이 태어난지 100년, 고인이 된지 40년, 건천마을 깊은 골에 복원된 그의 生家마당에 가을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었다. 그 위로 어린 시절 목월의 영혼이 담긴 고추잠자리들이 유유히 날고 있었다. 가을은 이래 저래 참 서글픈 계절이다.해가 이미 서쪽 자하산으로 기울고 있었다.가을을 몹시타는 또한 첨지 나그네되어 "나그네" 시를 읊어보니 인생허무를 느껴본다.

"이별의 노래"

https://youtu.be/TpFlLLKT8Kk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1986년에 나온 박목월 평전·시선집 "자하산 청노루'에서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대생과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이별의 노래"라고 밝혔다.

목월이 피난시절 대구에서 알게 된 H씨 자매가 있었다.
자매가 모두 목월의 시를 좋아해 그를 자주 찾아왔다.
木月은 처음에 흔히 있는 팬과의 만남 정도로 H양 자매를 대했다.

그러는 사이 휴전(1953년 7월)이 되자
목월은 가족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의 대학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자매도 상경했다.
언니가 결혼을 하자 이번엔 동생이 혼자 목월을 찾았다.
동생의 가슴에 사랑의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목월도 그녀에게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1954년 초봄부터,

두 사람이 서울의 밤거리를 함께 거니는 날이 많아졌다.
목월은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자책감으로 괴로웠다.
어느 날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있는 가까운 시인 Y를 불러

H양을 만나 자신을 단념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Y씨를 만난 H양, Y씨의 말을 듣고 나서,
“선생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요."
저는 다만 박 선생님을 사랑할 뿐, 더 이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무상의 사랑은 누구도 막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그해 여름이 가고 가을 바람이 불어 왔을 때

목월은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 동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제주 생활이 넉 달째 접어들 때였다.
겨울 날씨가 희끗 희끗 눈발을 뿌리던 어느날

부인 유익순이 제주에 나타났다.
목월과 H양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온 그녀는 두 사람 앞에

 보퉁이 하나와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보퉁이 안에는 두터운 목화솜으로 직접 누빈 겨울옷 두벌과 생활비에 보태쓰라고 돈봉투가 들어 있었다.목월과 H양이 입고 겨울을 지낼 수 있도록 보따리 싸들고 직접 제주로 찾아 온 것이었다.
아내 유익순은 남편에게도 H양에개도

전혀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고달픈 객지 생활이 걱정되어 며칠을 걸려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을 거쳐 연락선을 타고 물어물어 찾아 왔던 것이다.
유익순의 따뜻한 배려앞에 H양은, “사모님!”하고 울부짖어 가며

참회의 눈물을 실컨 흘렸다.
목월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 하숙생활은 그후 두 달 남짓 후에 끝났다.
유익순 앞에서 목놓아 울었던 H양은 목월을 단념하고

 제주를 떠나버렸다.
목월은 H양과의 이별 후 제주에 좀 더 머물다

1955년 초봄 가정으로 돌아왔다.
"이별의 노래"시가 이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부인 유익순은 돌아온 남편에게 한마디도 탓하지 않고

 반갑게 그리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목월은 전보다 더 충실한 가장이 되었다.

부인 유익순의 남편 목월사랑은 요즈음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일반 여인네들까지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유익순 여사는 詩와 詩人을 眞情으로 사랑했던 마음이

 한량없이 넓은 여인이었다.

몇십년 후 큰 아들 東奎(서울대 교수)가 어머님에게 물었다.
"엄마! 눈오는 겨울밤 몇시간을 어린 여동생엎고

눈 사람이 되어 바깥에 왜 서 있었어?"
"아버지 詩쓰시는데 아이가 울면 글을 못쓰잖어"
"그래도 네 아버지가 시를 발표하기 전에 꼭 날더러 읽어 보랬어.

나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었다"







♥목월의 아내 유익순의 인자한 모습.♥

바람난 남편 찾아 제주가는 길에
여인의 가슴은 얼마나 아리고 슬펐을까?
찢어지게 가난해 바늘질 등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善한 아내 유익순, 그녀의 忍耐하는 苦痛이 없었드라면 오늘의 목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오래된 흑백사진속 유익순의 모습에서 하느님사랑을 느껴본다./에발도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2.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에 사랑도 저물었네.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3.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영애 / 이별의 노래 / 작사 박목월 / 작곡 김성태






        

                    
       
(朴木月, 1916.1~1978.3)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별, 그 원초적인 아픔


이별離別

  모든 예술 쟝르를 통틀어 이 말 만큼 많이 쓰여진 단어가 또 있을까?

언제 들어도 가슴 져며오는 것은 아마도 우리네 삶이 만남과 이별의 연속선 상에 머물고 있음일 터이다. 그게 어디 우리네 삶 뿐일까보냐

스쳐지나는 바람이 그렇고 철따라 피고지는 꽃들이 그렇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만남과 이별이라는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수많은 시인묵객들은 우주만물의 생성과 소멸과도 맞닿아 있는

                      저 원초적이고 생래적인 아픔을 노래헸다.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목월의 시보다 작곡가 김성태 님이 작곡한 가곡으로 더 잘 알려진

<이별의 노래>를 두고 호사가들은 젊은 날 목월과 제자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도피 행각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전부라면 너무 허전하지 않은가.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이지만 시를 읽는 것은 독자 몫이라는 명언을 빌려

       시인이 각 연에서 반복하고 있는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에 주목해보자.

에로스적인 사랑을 노래했다면 그리움 기다림 영원 뭐 이런 감각적인

 시어들이 좀 더 보여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뜨겁게 사랑하던 사람을 두고 네가 가니 나도 간다는 식의 결말이라면 너무 통속적이지 않은가.

    시인은 첫 연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둘째 연에서는 저문 밤을,

         마지막 연에서는 눈 쌓인 겨울밤을 시적 제재로 삼고 있다

       시인은 사람의 힘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이별을 자연현상을 빌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 속에 나타난 너와 나는 단순히 사람에 대한 지칭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자연의 순리로써 너와 순리 속에 살아가는 유한한 생명체로써 나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들어보는 이별의 노래

                                                           우리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이즈음이면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의 울음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런 정서 속에서 성장한 때문인가 늦은 밤이나 새벽 무렵

우리 집 벽에 걸려있던 조그만 스피커에서 이 노래가 나오기라도 하면

 감성어린 소년이었던 나는 까닭모를 슬픔에 눈가를 적시고는 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게 <이별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다르지 않아서 비장감마저 느껴지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저무는 가을 나딩구는 낙엽들처럼 수많은 이별을 떠올린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나도 가고 또 너도 가야지




                                                   

                                         

                                        박목월 시 김성태 곡 . 테너 박세원 노래 <이별의 노래>

                                                        





출처 : 용
글쓴이 : butyyiou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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