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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의 기사와 사는 이야기/나들이길에 만난 풍경

경북 영양 주실마을과 조지훈 문학관 - 영양 가볼만한곳

by 한빛 (hanbit3) 2015.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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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시인의 <승무>



영양 주실 마을은 시인 조지훈 님의 고향이고 그의 '시혼'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마을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이곳 문화해설사인 조석걸 님이 우리 곁으로 왔다.

그는 조지훈 시인의 후손이라고 했다.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한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처음엔 이거 괜히 시간 뺏기는 게 아닌가 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도 알 수 있었고,

듣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뻔한 얘기도 많았다.



주실 마을의 문화해설사 조석걸 님, 이분은 조지훈 시인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아주 자세하고 차분하게 설명을 잘 해주셨답니다.


조지훈 시인이 태어난 곳 [호은종택]이에요.이곳은 선생의 할아버지댁이지요. 본가가 따로 있긴 하지만 선생이 태어날 때는 이곳에서...

'조지훈 시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승무>와 <낙화>이다.

하얀 고깔 나빌래라~ 로 시작하는 <승무>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우기도 했던 것이라 너무나 익숙한 시였다.

이 분의 고향이 경북 영양이고 바로 이곳 주실마을이라는 게 놀랍다. 그만큼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겠지.


조지훈 선생은 또 '지조론'으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일제강점기 때에 나라 안의 지식인들이 변절을 일삼는 것을 보고,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행동한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자기 뜻을 지켜 마음을 곧추세우기가 힘든데, 그 시절 일제의 식민지에 놓여있을 때, 그렇게 신념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호은종택 안의 모습이랍니다.


요건 안에서 바깥 대문채를 바라보면서... 

호은종택의 부엌인데요. 옛집에 자주 다니면서 봐도 부엌문이 이렇게 큰 건 처음 봤어요. 그만큼 규모가 큰 집이랍니다.



여긴 호은종택 뒤쪽이랍니다. 조금 다른 게 있지요? 유리문이랍니다. 

문화재해설사이자 조지훈 선생의 후손이기도 하신 조석걸 님의 말씀에 따르면,

나중에 보수를 할 때, 문화재 가치를 잘 몰랐을 때라서 저렇게 유리로 창문을 냈다고 얘기를 하네요.

 

조지훈 문학관 가는 길인데요.

이곳에는 너른 공연장이 있어요.

아마도 갖가지 공연도 하는 가 봐요.

조지훈 예술제가 해마다 이곳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조지훈 선생의 어린시절부터 청년기 등, 그분의 삶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조지훈 시인의 형인 세림도 문학청년이랍니다. 

일찍부터 동요와 동시를 쓰고,

벌써 열여섯 살 때,<소년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항일의식이 짙은 소인극 공연도 하곤 했답니다.

일제의 강압, 감시를 많이 받으면서도 그 지조를 꺽지않고 활동을 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스물 한 살 나이에 말이에요.

이 지역 또다른 시인인 오일도 시인과 조지훈 시인이 형, 세림이 죽은 다음 해에 습작들을 모아 '세림시집'을 펴냈는데,

일제의 감시 때문에 대부분 불에 타버리고 유작이 몇 편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조지훈 선생은 청록파 시인이었지요.

청록파 시인은 바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이렇게 세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세 분이 함께쓴 작품을 모아서 <청록집>을 펴내면서 이분들을 일컬어 '청록파 시인'이라고 합니다.

세 분 모두 자연을 바탕으로 삼아 시를 쓴 분들이라서 우리가 참 좋아하는 시를 많이 썼지요.


아 참, 이 세 분의 특징을 잘 나타낸 글이 있었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세 사람이 걸어갈 때면, 조지훈은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보며 걸었고,

박두진은 늘 직선 자세로 앞만 보고 걷고,

박목월은 언제나 땅을 내려다보며 걸었다고 합니다.

이것만 봐도 조지훈 선생의 꼿꼿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조지훈 시인의 집안은 모두 대단한 분들이시네요.

할아버지는 유학자이면서도 신학문을 경상도 땅, 영양에 가장 먼저 받아들인 분이기도 합니다. 

창씨개명을 마을 전체가 굴복하지 않고 일제에 대응했던 마을이 바로 이곳 주실마을인데,

이분의 영향이 가장 컸지요.

한국전쟁이 일어났을때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 겨누며 인륜이 무너지는 것을 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분이지요?

아버지도 역시 아주 멋진 분이랍니다.



조지훈 선생이 생전에 쓰던 물건들이에요.



선생의 일생을 돌아볼 수 있는 사진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었답니다.


아, 이건... 선생이 쓴 시를 여동생과 함께 직접 낭송을 한 시를 들을 수 있는데요. 

<낙화>를 읊는데, 가슴이 뭉클했답니다.

그것도 선생의 말년에 몸이 좋지않아 조금은 쉰 목소리로 낭송을 합니다.


조지훈 문학관 바깥 모습이에요.

저 왼쪽에 보면, <김난희 여사 작품전>이라고 쓴 걸개막이 보이지요?

김난희 여사는 조지훈 시인의 아내랍니다.

서예와 서화로 이름난 분인데, 남편의 시를 가지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조지훈 시비공원에는 공원까지 오르는 길목에 이렇게 선생의 시를 새긴 바위를 하나하나 보면서 옵니다.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래라~ 바로 승무입니다. 조형물이 예술이지요?


낙화... 선생의 눈으로 이 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요.


조지훈 시인의 본명은 '조동탁'이랍니다. 선생의 동상이에요.



주실마을에는 곳곳에 이렇게 기와집으로 된 집이 많았어요.


여기는 옥천종택



마을 골목길에는 굽이굽이 도는 기왓장 흙담이 아주 예쁩니다. 구불구불 곡선이 참 아름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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