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말무덤'을 찾아서
"어, 잠깐만! 서봐!"
"왜? 뭐 있었어?"
"저 뒤에 뭔가 있는데, 무슨 무덤이라는데?"
"뭐지? 구미에 있는 의우총, 의구총, 뭐 그런 건가?"
▲ 말무덤 '말무덤'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런데 말무덤엔 '말'이 묻혔을까요?
'말무덤'? 타고다니는 말? 아니면...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마을 앞을 지나갈 때였어요. 무언가 문화재를 알리는 알림판을 봤는데, 자동차로 가다 보니, 그만 스쳐지나가고 말았지요. 남편이 차를 세우라고 외치면서 무언가를 봤다는 거였어요.
다시 뒤로 가보니, 역시 무덤이 맞았어요. 그런데 '말무덤'이라고 하네요. 말무덤이라……. 말을 묻었단 말인가? 아, 그러고 보니 '말무덤'이라 쓴 글귀 옆에다가 (言塚)이라고 한자로 써 있네요. 구미에는 오래 앞서 <오마이뉴스>기사로도 소개했던, 충성스런 개와 소를 묻은 무덤, '의구총'과 '의우총'이 있답니다. 그런 종류의 무덤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봐요.
[관련기사 보기- 어라! 여긴 교과서에서 배웠던 거기잖아?]
▲ '말무덤' 가는 길 들머리에서 한 200m쯤 올라가면 이렇게 크고 작은 바윗돌이 보여요. 바윗돌엔 글씨가 가득!
"뭐야? 저게 '언총'이란 말이지? 그럼 우리가 말하는 '말'을 묻었단 말이야?"
"뭐 그런 것 같아. 아무튼 가보자."
궁금해서 못 견디겠더군요.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말무덤'이라 가리키는 쪽으로 올라가봤어요. 들머리에서 한 200m쯤 올라가니, 무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땅에 여럿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바윗돌에는 여러 가지 '말'과 관련된 글들이 매우 많았어요. 우리 나라 '말'이 들어가는 속담도 있고요. 체언담도 적혀있더군요.
<길 아니면 가지 말고 말 아니면 듣지 말라>
<세 살 먹은 아이 말도 귀담아 들으라>
<귀는 크게 열고 입은 작게 열랬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혀 밑에 죽을 말이 있다>
<말 단 집 장맛이 쓰다>
▲ 말무덤 말!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 말무덤 말! 입에 쓴 약이 병에는 좋다, 혀 밑에 죽을 말이 있다.
▲ 말무덤 말무덤 앞에도 이렇게 바윗돌 위에 '말'에 관한 글들을 적어놓았네요.
우리는 말무덤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봤지요.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도 갖가지 바윗돌이 보이는 걸 보니, 여기가 말무덤이었군요. 말무덤이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알아보려고 안내판을 꼼꼼히 읽었어요. 진짜로 우리가 말하는 '말'을 묻은 게 맞네요.
▲ '말무덤' 이것이 바로 말무덤이랍니다. 타고 다니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말'을 묻었다고 하네요. '말'을 묻다니? 궁금하시지요?
커다란 봉분이 하나 보이고, 그 앞에는 너른 콩밭이 펼쳐져있습니다. 봉분 앞쪽에는 조금 허물어진 듯도 보이네요. 말무덤 곁에는 잘 정비되고 관리가 잘 되는 듯 보였는데, 정작 이 말무덤 자체는 너무 보존이 안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군요. 더구나 나중에 알아봤지만, 제가 알기로는 우리 나라에 이런 종류의 '말무덤'은 이곳 예천군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얼마든지 보존할 값어치가 있는 듯한데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
▲ 말무덤 안내판 너머로 보이는 봉분이 바로 말무덤이랍니다. 한쪽이 조금 허물어져있어요. 오랜 세월을 견딘 탓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관리가 좀더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말'을 묻게된 배경
말을 묻은 시기도 알림판에는 400년~500년 전이라고 나와 있더군요. 그럼 왜 말을 여기에 묻게 되었냐고요? 그 까닭을 알아보니,
마을에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문중들 끼리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자꾸 큰 싸움으로 번지며 말썽이 잦자 마을 어른들은 그 원인과 처방을 찾으려고 애썼는데, 어느 날 이곳을 찾은 나그네가 마을 뒷산의 모양을 보고,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이어서 개가 짖어대는 모양이라 마을이 시끄럽다"고 하며 예방책을 일러주었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은 나그네가 말한 대로 개 주둥이의 송곳니쯤 되는 마을 입구 논 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쯤 되는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바위를 세웠다.
또 싸움의 발단이 된 말썽 많은 말(言)들을 사발에 담아 주둥개산에 묻어 말무덤(言塚)을 만들었는데, 그 뒤부터는 이 마을에 싸움이 없어지고 평온해져 지금까지 화목하게 잘 지내게 됐다고 합니다.
▲ 말무덤 바윗돌 말무덤 둘레에 바윗돌에는 갖가지 '말'에 관한 속담이나 체언담이 적혀져있어요.
예전부터 내려오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믿기 어려운 것들도 많지만, 그래도 퍽 신기하지요? 그리고 나그네가 일러주어 세웠다던 마을 입구와 논 가운데 바위는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을 묻은 '말무덤'을 보니 옛사람들의 슬기로움과 지혜가 엿보이네요.
바위에 적힌 '말'에 관련된 글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둘러보며 읽어봅니다.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매우 많았어요. 그 가운데에 고종황제가 말했다고 한 글이 오랫동안 남네요.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마을 그 옛날 대죽리 마을에 '말무덤'을 만들고 난 뒤엔 정말 마을사람끼리 화목하고 '말' 때문에 다투지 않고 살아갈까요? 겉으로 봐도 굉장히 평온한 마을 같아 보이네요.
▲ 고종황제가 한 말!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 -고종황제-
아울러, 살아가면서 나또한 '말'로 남을 상하게 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가끔은 성내고 화내면서 말할 때도 있잖아요. 그때마다 이 '말무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이왕이면 지역에서 좀더 잘 관리하고 보존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 기사 바탕글 보기-->아니, 뭐? ‘말’을 묻었다고?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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