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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의 기사와 사는 이야기/나들이길에 만난 풍경

꽃 없는 '꽃 잔치' 헛심만 썼다! (의성산수유꽃축제)

by 한빛 (hanbit) 201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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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의성산수유꽃축제 몇 해 동안 가까운 곳에 두고도 일정을 맞추지 못해 가지 못했다가 벼르고 별러 찾아간 꽃잔치랍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요? 꽃잔치에 꽃이 없어요.  
 

"자기야, 우리 좀 쉬었다가 가자. 도저히 이대로는 못가겠다."
"그러자, 많이 춥지? 오늘 날씨가 안 도와주는구먼."
"진짜 너무 춥다. 손이 꽁꽁 얼었어. 브레이크도 못 잡겠어."
"3월, 아니 낼모레면 4월인데, 우째 이래 춥나, 해도 났는데."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와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에서 열린다는 '산수유꽃축제'를 보러 가는 길이었어요. 그동안 날씨가 고르지 못하고, 유난히 추운 날이 많아서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 한 번 제대로 못 했답니다. 지난 27일 큰맘 먹고 의성 꽃잔치에 가려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나왔지요. 자전거로 오가자면 못해도 130km쯤 되는 거리이기에 일찍부터 서둘렀지요.

 

이른 시간이었기에 어느 만큼은 추울 거란 각오를 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왔지만, 한 시간쯤 달려서 구미시 장천면에 들어설 때쯤엔 너무나 추워서 손발에 감각이 없고, 몸이 뻣뻣해져서 자전거를 굴릴 수 없었답니다. 그럴땐 잠깐이라도 쉬었다 가야 합니다.

 

4월이 낼모레인데, 우째 이래 춥나!

 

날씨가 참으로 희한합니다. 3월 끝 무렵인데도 이렇게 춥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요. 하기야 며칠 앞서 서울엔 눈도 내렸다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더구나 이른 아침 시간이라 찬바람을 안고 달려야 하는 우리는 고생을 사서 합니다. 쉬는 동안 너무 추워서 퉁퉁 부어오른 손과 발을 부비고 아침거리로 싸가지고 온 김밥을 먹습니다. 그야말로 추위에 개 떨 듯 '덜덜덜' 떨면서 먹었어요. 배가 고프면 더 춥게 느껴지니까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합니다.

 

"그나저나 오늘 꽃잔치에 꽃이 피긴 했을까?"
"글쎄, 구미에서도 아직 꽃핀 걸 못 봤는데, 의성에는 어떨는지 모르지."
"이렇게 고생하고 갔는데, 꽃도 안 피었으면 너무 허무하잖아."
"하하, 그래도 오가는 과정이 재밌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오늘도 틀림없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야. 자전거 타면서 봄날 이렇게 추운것도 처음이야."

 

 

 

▲ 만천리 고갯길 어지간한 오르막길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오를 수 있건만, 너무나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탓도 있겠지만, 봄철 같지 않은 추운 날씨에 맞바람과 싸우면서 먼길을 달려와 고갯길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답니다.  
 

잠깐 쉬었다가 이내 또 자전거에 올라탔어요. 아직 갈 길이 머니까 부지런히 밟아야 합니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가는 내내 맞바람입니다. 차가운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바람까지 안고 가려니 참으로 죽을 맛입니다. 해는 떴는데도 따뜻해지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길 가에 드문드문 노란 빛깔이 감도는 산수유꽃도 만납니다. 그런데 불안합니다. 이제 겨우 꽃망울이 움튼 정도랍니다. 이거 참말로 아까 얘기한 대로 꽃잔치에 가서 꽃구경도 못하고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금성군 대리리 '조문국' 경덕왕릉에 닿으니, 날씨가 조금 누그러졌어요. 햇살이 차츰 따뜻해집니다. 사곡면 화전리까지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합니다. 고개도 하나 넘어야하고 힘든 길이지만, 덜 추우니까 더욱 힘을 내어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사곡면 화전리,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곡면 화전리,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꽃이 많이 피는 마을인가 봅니다. 들머리에 들어서니 길가에 심어놓은 나무들도 모두 산수유네요. 아직 꽃망울만 달고 옅은 노랑빛깔 만이 산수유라는 걸 겨우 알 수 있을 듯했어요. 올해로 네 번째 치르는 꽃 잔치라고 하는데, 이 마을의 특성을 살려서 가로수로 심었나 봅니다.

 

행사장에 다다르니, 갓길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차들이 먼저 반깁니다. 무려 65km나 되는 먼 길을 추위와 맞바람을 견디며 달려왔는데, 이렇게 차들이 많은 걸 보니 꽃이 피긴 피었나보다 싶었어요. 지역에서 치르는 '축제'에 그것도 산골짜기 안에 자리 잡은 곳인데도 이처럼 많은 이들이 찾아온 걸 보며 무척 놀랐어요.

 

의성군에서도 홍보를 꽤나 잘했나봅니다. 우리 구미에서 열리는 이와 비슷한 '축제'도 여러 번 가봤지만 정작 찾아오는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볼 때마다 마음 한 쪽이 늘 씁쓸했거든요.

 

 

 

▲ 산수유 꽃길 꽃 잔치가 열리는 곳인데도 정작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꽃길로 만들어놓은 오솔길을 걷는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고요? 아름다운 꽃길을 기대하며 왔기 때문이지요. 꽃구경보다 꽃길 곁에 있는 의성군의 자랑인 '의성마늘'밭을 보는 재미가 차라리 더 낫습니다. 요즘 한창 파랗게 순이 돋아나고 있답니다.  
 

저마다 길가에 차를 대놓고 내려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그 줄이 무척이나 길고 기네요. 한참을 걸어가야만 행사장에 닿을 수 있더군요. 논에다가 임시로 마련한 주차장도 여러 군데 있었지만 다 대놓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찾아왔네요. 행사장 모습은 여느 것과 다름없었어요. 줄을 맞춰 천막을 쳐 놓고 대목을 노리는 장사꾼들이 무척 많았답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행사장 곳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이번 잔치에 주인공인 산수유 꽃을 볼 수가 없어요. 아니나 다를까, 오는 내내 걱정했던 것처럼 꽃은 아직 피지도 않았고 그나마 꽃망울이 조금 맺혀있을 뿐이었답니다. 산수유나무 꽃길을 따로 내놓긴 했는데, 꽃길에 꽃이 하나도 없으니 밋밋한 오솔길을 따라 그저 오가는 사람만 몇몇이 있더군요.

 

그들 가운데엔, '꽃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처럼 사진기를 들고 삼각대까지 갖춰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온 사진작가들도 눈에 띄었지만 마땅한 사진감(?)이 없으니 길을 따라 갔다가 이내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우리도 몇 해 동안 구미와 가까운 의성에서 '산수유꽃 축제'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 한 번도 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큰맘 먹고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달려왔건만 너무나 허탈하고 아쉽더군요.

 

 

▲ 꽃 잔치에 찾아온 사진작가들 우리처럼 멋진 사진을 찍으려고 찾아온 사진작가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장비를 챙겨 큰 기대를 안고 왔지만, 정작 사진감(?)이 없습니다. 꽃길 따라 갔던 이들이 이내 돌아오고 있더군요.  
 

'행사를 취소하고라도 다시 일정을 잡았더라면'

 

본디 이런 꽃 잔치는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열리곤 합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추운 날씨가 계속돼 꽃이 제때 피지 못했다면 차라리 행사를 좀 미루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실제로 '광양매화꽃축제'나 '구례산수유꽃축제', '땅끝매화축제' 등은 일정을 잡았다가 취소했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이런 축제를 할 때면, 지역 사람들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가는 줄로 압니다. 먼 곳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온 사람들이 정작 꽃구경 하나 하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을까요? 행정을 펼치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생각하고 축제를 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꽃구경하러 왔다가 꽃은 보지도 못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바리바리 챙겨서 자전거 앞에다가 무겁게 매달고 온 DSLR 사진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답니다. 꽃과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야 그나마 예쁜 풍경사진이라도 찍을 텐데,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사람사진만 찍을 수도 없고, 자칫하면 '몰래카메라'가 될 수도 있기에 그랬답니다.

 

아쉽고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배라도 채워야 다시 힘을 내어 구미까지 돌아갈 수 있겠기에 점심 먹을 곳을 찾으니, 가는 곳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자리도 없더군요. 하는 수 없이 아무 곳이나 비집고 앉아 잔치국수와 파전을 시켰답니다. 그러나 국수 한 그릇 먹기도 힘들군요. 거의 40분 남짓 기다렸다가 나온 음식을 보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멀건 국물은 멸치 냄새 날 듯 말 듯하고 고명이라고는 김 부스러기 달랑 올려놓은 게 다입니다. 게다가 국수는 설익어서 거의 '생 거다' 싶을 정도였어요.

 

해물파전에는 오징어 조각 몇 개 있는 게 다이고 참 해도 너무한다 싶더군요. 으레 이런 행사장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좀 심하더군요. 어디에서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참 맛있게 먹는 식성 좋은 우리인데,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긴 했지만 몹시 씁쓸했답니다.

 

 

 

 

 

▲ 멀건 잔치국수 꽃구경하러 온 손님들이 오면 으레 이곳 행사장 음식들을 사먹게 되지요. 생각보다 손님이 많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기다려야하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기다렸다가 나온 음식이 참... 할말을 잊게 하더군요. 멀건 국물에 설익은 국수, 신김치 몇 조각이 다였어요. 은근히 부아가 치밀더군요. 
 
 
 

 

이른 아침부터 고생고생하며 찾아온 '의성산수유꽃축제', 참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겁니다. 몹시도 씁쓸하고 허탈한 기억으로 말이지요. 돌아오는 길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고생하긴 매 한 가지네요. 어떻게 된 게 올적 갈 적 맞바람을 맞으며 달려야 했어요.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 다시 돌아온 시각이 저녁7시 반쯤이었어요. 134.9km를 타고 왔는데,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집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추위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자주 다녔던 의성군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지나면서 철을따라 또 다른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 여름 풍경 지난 여름, 8월에 기사 보기 ☞'[사진] 아름다운 풍경 보고 눈물 흘려 보았는가?' 라는 기사에서 소개했던 순호리 마을 들판 풍경입니다. 여름엔 이렇게 푸른 논 사이로 난 길과 어우러져 참으로 멋스러웠던 곳이지요. 똑 같은 장소인데 봄철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 돌아오는 길에 순호리를 다시 지나다.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 지난 여름 8월에 이곳을 지나왔는데, 이번에 또 이곳을 거칩니다. 여름엔 푸른 논과 그 사이로 난 길이 어우러져 멋들어진 풍경을 만들었는데, 이 봄엔 벼가 익던 그 자리에 의성의 자랑거리인 마늘이 대신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나들이에서 꽃구경은 못했지만, 철을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는 이런 시골풍경들을 보고 왔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답니다.

 

 

▲ 덧붙이는 글 | 올 해 네 번째로 열리는 '의성산수유꽃축제'는 2011.03.26(토) ~ 2011.04.10(일) 까지 열립니다. 그런데 정작 행사를 시작할 때는 꽃이 하나도 피지 않았답니다. 행사가 끝나는 다음주에도 꽃이 활짝 피지는 못할 듯하네요. 날씨가 잇달아 따뜻하면 괜찮겠지만, 아마도 제 생각엔, 두 주 뒤쯤이면 아름답게 핀 산수유꽃마을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사글입니다. 기사 바탕글 보러 가기 ☞  꽃 없는 '꽃 잔치', 대체 이게 뭡니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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