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64] 두메산골 이야기 아홉 - 작은리 (셋)
▲ 경북 성주군 수륜면 작은리 마을 회관 지난해에 지은 마을회관이에요. 산골마을 작은리에서 가장 '현대식' 건물이랍니다. 산골마을 어르신들의 살가운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손현희
작은리
어쩌다 보니, 오늘도 두 바퀴 대신 두 발로 걸어온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해가 길고 따뜻한 여름날이라면, 멀리 나가더라도 하루 만에 돌아올 수 있지만,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는 무척 힘겨운 일이지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넉 주에 한 번쯤은 시외버스를 타고 아무 데라도 내려서 마을 구경을 하고 오자는 다짐도 했답니다.
지난주(14일)에는 올해 첫머리에 한 번 다녀왔던 경북 성주군 수륜면 작은리 마을에 따로 맡은 취재가 있어 다시 다녀왔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버스를 타야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두고 나갑니다. 이 마을에는 밥집이 없기 때문에 도시락까지 싸야 해서 더욱 바쁘게 서둘렀답니다.
구미에서 왜관, 왜관에서 성주까지, 또다시 성주에서 작은리까지 가는 동안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탔답니다. 지난번에 갔을 때에 '0번 버스' 사진 찍는다고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허탕을 쳤는데, 이젠 우리가 이 버스를 타고 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설레고 신나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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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도 정겨운 작은리, 배티(배고개)
산골마을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야기도 듣고 동영상도 찍으면서 짧은 '버스여행'을 마치고, 작은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배티'에서 내렸어요. 마을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고령에 장보러 간다면서 밖에 나와 차를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 한 분을 만났어요. 이런저런 마을 이야기와 산골마을 사람들 '발'이 되어주는 고마운 버스 이야기까지 즐겁게 해주십니다.
작은리는 지난번 기사에서도 소개한 대로 여러 마을이 따로따로 흩어져 사는 곳이에요. 날마다 한 번씩 버스 타고 고령으로 마실 간다는 할머니가 사는 거뫼 마을을 시작하여 산거리, 덕골, 모방골, 개티(개고개), 배티(배고개), 이렇게 뚝뚝 떨어져 있어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마을이 배티인데, 지난번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을 여럿 만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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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사람들도 여느 시골처럼 거의 어르신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사는데, 집안 식구들(친척)이 반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열아홉 집 가운데 자기 차가 있는 집이 대여섯 집뿐이고 나머지는 버스를 타고 바깥나들이를 하신댔어요. 마을 분들 모두 나락농사를 소박하게 짓고 사는데, 겨울철이라 그리 바쁜 일은 없지만 저마다 무척 부지런하게 살고 있었답니다.
마을 앞에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저기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납니다.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너덧 개를 끈 하나에 묶어서 질질 끌면서 오는데 무척 힘겨워보였어요. 우리를 보면서 반갑게 웃으시며 잠깐 쉬어가야겠다며 길가에 털썩 앉으시더니, 뭐 하는 사람들이냐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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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대나무는 뭐하시려고 그렇게 무거운 걸 끌고 오세요?"
"이거 쪼개서 꼬추때(고추농사 지을 때 쓰러지지 말라고 묶어두는 대롱) 할라꼬."
"아니, 고추농사 다 끝났잖아요."
"아이, 내년 봄에 또 써야흔게이."
"내년에 쓸 걸 벌써 준비하세요?"
"그럼 미리미리 해놔야지 편하지."
잠깐 쉬시더니, 또다시 일어나서 대나무를 묶은 끈을 쥐려 합니다. 남편이 얼른 와서 할머니한테서 끈을 빼앗아 쥐고는 끌고 갑니다.
"집이 어디세요? 제가 갖다드릴게요."
"아이구, 됐어. 내가 해도 되는구망."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듯 내주지 않으셨지만 억지로 빼앗아 갔어요. 그러고는 번쩍 치켜들더니, 이내 혀를 내둘렀어요. 생각보다 많이 무겁다면서 할머니가 어찌 이 무거운 걸 들고 오셨냐고 하더군요. 할머니는 연신 "아이구 고마버라. 아이구 고마버요"하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포도즙 세 봉지를 꺼내오셨어요.
아드님이 올가을에 농사지은 걸로 만든 거라면서, 말릴 틈도 없이 먹으라고 주시는데 할머니 맘 씀씀이가 얼마나 살가운지 몰라요. 대나무 더미를 집안으로 옮겨드린 거밖에 없는데, 그걸 이렇게 고마워하시니 우리가 오히려 부끄러웠답니다.
할머니 집에는 낮은 돌담이 울타리를 치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남편)가 쌓은 거랍니다. 벌써 쉰 해도 더 되었다는데, 그동안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쌓고 하셨대요. 우리가 이것저것 사진을 찍는 걸 보시더니 우리를 이끌어 올해 쑤어 매달아 놓은 메주를 구경시켜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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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개 메주 할 때, 내가 머리를 감고 했더이 메주에 머리카락이 다 났어. 이거 봐, 꼭 머리카락 같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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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신기했어요. 네모난 메주에 진짜로 까만 머리털이 숭숭 나있었어요. 미처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뜯어내는 바람에 머리카락 달린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참으로 놀랍더군요. 아마도 예부터 메주를 쑬 때나, 장을 담글 때엔 몸가짐도 바르게 하고, 행여 부정타는(?) 일은 하지도 않는다고 하더니, 메주 쑤기 앞날 머리를 감으면 메주에 머리카락이 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나 봐요.
할머니 집에는 오며가며 할머니한테 빌붙어 사는 식구가 하나 있어요. 마당에 개밥그릇 같은 게 있어 여쭸더니, 고양이 한 마리가 밥 때만 되면 온다고 합니다. 집에서 따로 키우는 것도 아닌데, 올 때마다 조금씩 할머니 드시는 밥을 나눠줬더니, 기가 막히게도 밥 때만 되면 알고 찾아온다고 했어요. 마침 뒤뜰에서 '야옹~!' 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 한 마리가 오는 게 아니겠어요? 마치 우리가 제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양이 이름은 '살찐이', 이 마을에서는 고양이를 부를 때 그렇게 부르나 봐요. 할머니네 고양이뿐 아니라, 저 윗마을 개티에서도 고양이를 만났는데, 거기도 이름이 '살찐이'라고 하더군요. 옛날에 시골에 가면 강아지 이름은 모조리 '메리' 아니면 '독구'라고 하더니, 고양이도 '살찐이'라고 하나 봐요. 통통하게 살이 쪘다고 그런대나 봐요.
산골마을 작은리, 마치 이 마을에서 우리가 나고 자란 것처럼 정겨운 고향 풍경에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여기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모두 '우리 할매' 같고, 어르신들 마음 씀씀이나 살가운 말투가 고향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합니다. 이래서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산골마을 찾아 떠나나 봅니다. 조용한 산골에서 삶터를 이루고 큰 욕심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부모님을 만나러 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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