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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의 기사와 사는 이야기/나들이길에 만난 풍경

하루 승객 1명...그래도 0번 버스는 '꿋꿋이' 달린다

by 한빛 (hanbit3) 2008.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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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히어로] 경북 성주군 수륜면 작은리, 산골마을을 달리는 버스와 사람들 

드디어 12월입니다. 한 해 동안 가장 잘한 사람들, 1등이었던 사람들을 뽑는 자리가 곳곳에서 열립니다. 1등만 수고했겠습니까. 중간도 꼴찌도 모두 열심히 달렸기에 2008년이 마무리됐겠지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뒤에서 묵묵히 받쳐준 이들을 다룹니다.  여기 하루 평균 승객 한 명, 시장원리에 따르면 문을 닫는 게 정상이겠지만, 그 한 명을 위해서 달리는 '0번 버스'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 이 좁은 산길에 버스가 다닌다고요? 여러분 믿어지세요? 이렇게 좁디좁은 산길에 버스가 다닌다면요.
ⓒ 손현희
0번버스

버스승객은 우리 부부와 기사 아저씨, 단 셋

 

"이 할매는 버스 타는 재미로 살아요."

"아, 그래요?"

"하루에 한 번씩 안 나가믄 몬살거든."

"하하하! 그럼 이 할머니가 0번 버스 단골손님이시겠네요."

"할매, 버스 전세 냈지 뭐."

 

경북 성주군 성주버스정류장에서 하루에 딱 두 번만 간다는 '0번 버스' 기사 아저씨는 두메산골 작은리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분이랍니다. 마을이라고 해봐야 겨우 예닐곱 집밖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 만큼 식구 같은 분이지요. 어느 집에 잔치가 있고, 어느 집 할머니 머리 모양이 바뀐 것까지 다 아니까요.

 

하루 두 번, 오전 10시 그리고 오후 3시에 성주버스정류장을 떠나 두메산골 수륜면 작은리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오는 버스, '0번 버스'에 타려고 이른 아침부터 얼마나 서둘렀는지 몰라요. 어쩌다가 차 시간을 놓치면 오늘 하루 모든 계획이 엉키게 되니 얼마나 바빴는지 모릅니다.

 

  
▲ '0번 버스' (주)경일교통 경북 70자 9123호 최병국(50) 기사님 올해로 벌써 8년째 작은리 마을을 오가며 마을 사람들 발이 되어주시는 고마운 분이랍니다. 울퉁불퉁, 덜컹거리는 좁은 산길을 아주 잘 달리는 '0번 버스 달인'이시지요.
ⓒ 손현희
0번버스

오전 10시에 출발한 '0번 버스' 손님은 우리 부부와 기사 아저씨, 이렇게 딱 셋입니다. 정류장을 떠나 한 십오 분쯤 달렸을까? 버스는 어느새 울퉁불퉁 흙먼지 날리는 산길로 들어섭니다. 우리가 이 마을을 처음 찾아왔을 때엔 올해 설 명절이었지요. 산골마을 좁은 길에 '0번 버스'가 지나간다고 하기에 자전거를 타고 그 먼 길을 달려와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몇 시간 동안 기다리다 허탕만 치고 돌아갔던 적이 있었답니다.

 

"하루에 손님은 몇 사람이나 되나요?"

"뭐 만날 이래 텅텅 비어서 가는데요. 저 가믄 날마다 타는 할매 하나 있어요."

"그럼 하루 평균 몇 사람이나…"

"하루 평균, 하나!"

 

오늘(14일)처럼 고령 장날(4일, 9일장)이나 일요일에는 서너 사람 타는데 거의 손님 하나 없이 빈차로 다닐 때가 많다고 하셨어요. 아무리 산골마을 사람들 '발'이라고 해도 이렇게 손님이 적은데 어떻게 꾸려 가는지 궁금했지요. 틀림없이 '손해 보는 장사'일 텐데 말이에요.

 

"암만 손해라도 우짭니까? 여 사람들한테는 이기 단데."

"그럼 혹시 회사에서 이 노선을 없애려고 하진 않았나요?"

"아이고 아입니다. 그럴 일은 업심니다. 군에서 쪼매 지원금이 나오는데, 우짜든지 여는 군에서 하라카믄 해야 되는 거라서 그럴 일은 업심니다. 그래도 여 사람들은 이 버스 없어질까 봐 걱정을 마이 하지요."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흙먼지가 날리는 좁디좁은 산길, 이 좁은 길에 버스가 지나가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만 달립니다. 우리는 손잡이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꽉 부여잡았어요. 작은리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0번 버스는 낯익은 풍경들을 뒤로 하며 덜컹덜컹 요동치며 갑니다.

 

경일교통 9123호 0번 버스를 모는 최병국(50) 기사님은 그야말로 버스운전 달인이네요. 우리는 온몸이 이리저리 쏠리고 의자 밑에 내려놓은 가방이 이쪽저쪽 제 맘대로 마구 돌아다닙니다. 8년째 이 버스를 몰았다는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니, 한 손은 핸들을 잡고 한 손은 손잡이를 잡은 채, 좁고 구불구불거리는 길을 얼마나 잘 달리는지 몰라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빠빵~!'하고 틈틈이 짧게 경적을 울리면서….

 

"거 놔두소, 지 맘대로 놀다가 오구로."

"하하하, 이거 잡아 매놔야지 안되겠네요."

 

"어! 이 할매 없네? 오늘이 고령 장인디 장보러 안 가나?"

 

  
▲ 의자에 매어둔 가방 좁은 산길을 얼마나 덜컹거리고 가는지, 가방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녀서 의자에다가 매어두었어요. 아마도 가방이 몹시 어지러웠을 걸요?
ⓒ 손현희
0번버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아저씨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진까지 찍으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어요. 갑자기 이렇게 좁고 험한 길을 가다가 앞에서 오는 차와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런 때도 많다고 하시네요. 그럴 때면 꼼짝없이 뒤로 한참을 물러나야 한댔어요.

 

"아저씨 그런데 명절에는 운행을 안하시지요?"

"아이고 그때는 몬합니다. 모두 명절 시러 오믄 마캉 자기 차갖고 오니까 아무 데나 대놓으믄 오도가도 몬하거든요. 또 겨울에 눈발만 날렸다 카믄 몬옵니다."

 

지난 번 설에 왔을 때, 명절에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고 몇 시간 동안 기다렸던 생각이 나서 물었더니, 명절 연휴 때와 눈 오는 날엔 아예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윽고 첫 번째 정류장 '거뫼', 사실 정류장이라고 하기도 뭣해요. 그냥 집 앞에서 잠깐 섰다가 다시 차머리를 돌려서 가는 거예요.

 

"어! 이 할매 없네? 오늘이 고령 장인디 장보러 안 가나?"

"아, 이집인가 보지요?"

"예. 여 할매는 만날 나가는디 오늘은 어째 안 보이네요."

 

첫 번째 정류장에서도 손님 하나 못 태운 채 그냥 갑니다. 우리도 속으로 오늘 예까지 와서 버스 타는 손님 하나 만나지 못하고 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빠빵~!'

 

"어, 저 있네."

"저 할머니세요?"

 

거뫼마을을 벗어나 좁은 내리막길에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할머니가 차 소리에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으십니다.

 

"마이 와따! 오늘은 마이 와따. 내 운동할라꼬 부러 걸어왔재."

 

  
▲ 배티마을 어느 대문 앞 버스를 타고 고령 장에 가려고 기다리는 할머니와 함께 가방도 마실나갈 준비를 합니다.
ⓒ 손현희
0번버스

 

장날인데도 손님은 할머니 한 분 뿐

 

  
▲ 0번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 거뫼 마을에서 타신 할머니는 오늘 온종일 '0번 버스'에 탄 첫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이에요. 할머니는 날마다 버스 타고 고령까지 마실가는 재미로 사신답니다. 워낙 덜컹거리는 산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몹시 흔들리고 잘나온 사진이 없어서 많이 미안하네요.
ⓒ 손현희
0번버스

날마다 한 번씩 이 버스를 탄다는 할머니는 아저씨를 보더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 넘칩니다. 아이처럼 마냥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귀엽기까지 했어요. 어제는 고령에 나가서 파마를 하고 돈을 덜 주고 왔다면서 오늘은 그 값을 치르러 가신다고 하네요. 사실은 그걸 핑계 삼아 버스 타고 마실 나가는 거랍니다.

 

"오늘 가서 또 술 한 잔 하시겄네?"

"오늘 일요일이라 사람 만컸따."

"오늘 고령 장이라서 좀 있을랑가 모르겠네."

"일요일 아이가? ……."

"오늘이 일요일이고, 고령 장이라카이."

 

느닷없이 기사 아저씨 목소리가 커집니다. 우리는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도 아저씨와 할머니가 주고받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 통 못 알아듣겠는데, 아저씨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나도 옛날에는 목소리가 참 좋았는데, 이래 댕길라 카이 할매들 땜에 하도 감을 감을 질러대싸서 음성이 다 베맀다캉게요."

"여는 덕골, 저는 개티…."

"할매가 하도 마이 봐놔서 촬영을 안다캉게요."

 

묻지도 않았는데, 하나하나 작은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마을 이름을 일러주십니다. 할머니는 벌써 여러 번 '유명세'를 치렀다고 해요. 좁은 산길에 버스가 다닌다는 걸 알고 여러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고 갔다면서 그 덕분에 '촬영'을 안다고 하시네요.

 

  
▲ 좁은 길 작은리 마을은 산길에 들어서서 수륜면까지 나가는 신작로까지 거리가 한 10km쯤 됩니다. 거의 이렇게 좁은 길이지요. 첫머리에 들어서면 먼지가 날리는 흙길인데, 얼마쯤은 이렇게 아스팔트로 덮인 곳도 있어요. 이 좁은 길로 큰 버스가 가다가 앞에서 마주오는 차가 있으면 뒤로 한참을 물러나야 합니다. 저렇게 한쪽에 비켜설 곳이 있으면 다행이고요.
ⓒ 손현희
0번버스

거뫼를 시작으로 산거리, 덕골, 개티까지 오는 동안 날마다 고령에 나가신다는 할머니 한 분 말고는 아무도 타는 이가 없어요. 오늘이 고령 장날이라서 그나마 손님이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는 배티마을에서 내렸어요. 예까지 온 거, 작은리 마을을 배티에서부터 거꾸로 걸어 올라가면서 마을 구경을 하기로 했지요. 잘하면 오후 3시에 다시 들어온다는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배티마을에는 다른 곳과 달리 열아홉 집이나 있다고 합니다. 다른 데는 거의 너덧 집뿐이지요. 작은리 마을 가운데 가장 큰 마을 '배티', 여기까지는 그나마 고령에서 들어오는 버스(이 버스도 하루에 두 번 들어옵니다)가 있어요.

 

작은리엔 밥집도 하나 없고, 작은 구멍가게도 하나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여행자가 이곳으로 나들이라도 온다면, 꼭 도시락을 싸와야 하지요. 먼 길을 걸어갈 각오도 단단히 해야 하고요.

 

아주 오랜 옛날에는 '구판장'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시에서는 흔하디흔한 '동네슈퍼' 하나 없는 곳이에요. 물건을 사려면 버스를 타고 고령까지 나가서 한 번에 왕창 사가지고 온답니다.

 

"참말로 카믄, 여가 성주군에 속하니까 성주 장으로 나가야 되는디, 워낙 멀어서 고령으로 나갑니더. 그나마 저 버스가 없으믄 우린 꼼짝도 몬하는데, 저거라도 있으이 고맙지요. 또 우리는 고령에서 오는 버스라도 있으이 덜해도 저짝 우에 동네는 저 버스(0번 버스) 없으믄 병원에도 몬가요. 눈이라도 왔다카믄 오도가도 몬하니께 더 하지예."

 

  
▲ 606번 고령 가는 버스 그나마 배티마을까지는 고령에서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606번 버스가 있어 다행이에요. 하지만 그 윗마을인 개티,덕골,산거리,거뫼 마을 사람들은 '0번 버스'가 없으면 어디에도 갈 수가 없답니다. 아주 고마운 버스이지요.
ⓒ 손현희
0번버스

 

  
▲ 배티마을에서 만난 '군위데기' 어르신 ‘새밤데기’,‘마질데기’, ‘군위데기’하면서 마을 아낙들을 부르는 이름이 무척 정겹습니다. 마을에는 모두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이라서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픈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어요. 만약에 버스가 없다면 발이 꽁꽁 묶이고 만다면서 무척 고마운 버스라고 칭찬을 하십니다.
ⓒ 손현희
0번버스

마을회관 앞에 어르신 몇 분이 드문드문 나와서, '새밤데기', '마질데기', '군위데기' 하면서 마을 아낙들 이름을 부르면서 얘기를 하는데, 퍽 정겨워 보였어요. 모두 이 마을로 시집오기에 앞서 나고 자란 친정집 마을 이름을 붙여 서로를 부르는 거였어요. 아낙이라고 해도 모두 일흔이 넘은 할머니들이에요. 젊어 봐야 60이라고 하니,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지만 집집이 속내를 다 드러내고 서로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가는 곳입니다.

 

산골마을을 달리는 0번 버스, 울퉁불퉁 흙길을 달려야 하고, 구불구불 좁고 험한 길을 가야 하지만, 다만 한 사람이라도, 아니 날마다 손님 하나 없이 빈차로 다닌다 해도 이곳 작은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산골마을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매우 고마운 '발'이랍니다. 새삼스럽게 좁은 산길을 달리는 '0번 버스'가 무척 우르러 보입니다.

 

※ 돌아오는 길에도 '0번 버스'를 탔습니다. 걸어서 거뫼마을까지 올라가서 기다렸다가 '0번 버스'가 산길로 올라오는 사진도 찍었지요. 아침에 만났던 할머니는 용케도 차를 놓치지 않고 버스를 타고 오시더군요. 좁은 산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0번 버스'도 구경해보세요.

뒷 이야기와 더욱 많은 사진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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